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잊혀진 황군'(忘れられた皇軍), '청춘의비'(青春の碑) - 오오시마 나기사(大島渚)

본문

한국에서 '감각의 제국(愛の亡霊 L'Empire de la passion-1978年)'의 감독으로 유명한 오오시마 나기사(大島渚)감독의 텔레비젼 다큐멘터리 두편을 보고 왔다.


도쿄대학(東京大学) 情報学環丹羽연구실(研究室)에서 주최한 세미나를 통해서 였다.

무슨 세미나, 어떤 연구실인지 궁금하면  http://media-journalism.org/blog/event-oshirase/162-10 읽어보길...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오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을 보자고 12월에 정했는데 2013년 1월 15일 감독님이 폐렴으로 돌아가셔서, 일종의 추모상영 형식이 되어 버렸다한다. ㅠ.,ㅜ

 

이번에 본 두 작품은 일본테레비(日本テレビ)에서 '논픽션극장'(ノンフィクション劇場)라는 프로에서 방영되었던 '잊혀진 황군'(忘れられた皇軍)-1963년, '청춘의비'(青春の碑)-1964년이였다. 우연히 가게 됐지만, 정말 귀중한 시간이였다.


  '잊혀진 황군'「ノンフィクション劇場 忘れられた皇軍」(日本テレビ、1963年、25分)

スタッフ:(制)牛山純一 (脚)大島渚 (撮)柴田定則 須沢正明 (編)溜尾庫平 ()小松方正


세계 2차 대전에 일본군으로 참전한 한국인들, 전쟁에서 시력을 잃거나 팔, 다리를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한국인이기때문에 라고 말하며 보상해 주지않는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으로 전쟁에 나갔기 때문에 우린 책임이 없다라고 한다. 이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渋谷駅の前の広場に「元日本軍在日韓国人傷痍軍人会」の人々が集まって、自分達の悲惨な状況を訴えている。彼らは日本兵として戦いながらも戦後は「日本人でなくなった」ため軍人恩給が受けられず、戦後史の中で置き去りにされてきたのだ。中には手足を失ったり、全盲となった者たちもいる。一行は首相官邸まで行き、請願書を秘書官に渡す。次に外務省へまわり、最後に韓国駐日代表部へ向かう。だがどこでも彼らは相手にされない。またその行進を眺める日本人は無関心そのものである。一日の終り、彼らは焼鳥屋の二階で酒宴を始める。曇屈した思いと無力感から仲間喧嘩が生じ、全盲の元兵士が傷ついた両眼をカメラに向ける。


 우시야마(牛山)프로듀서가 기획한 작품이다. 오오시마 감독의 작품을 본 우시야마씨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작가성을 가지게 하고 싶은 오오시마감독에게 부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무엇을 그릴까 할때 전쟁과 운명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 한다. 감독은 이를 계기로 재판까지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응원했다고 한다.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한 카메라 무브와 격앙된 나레이션이 인상에 남는다. 감독은 이 작품의 나레이션은 자신의 발언이라고 말하며 일본인 이대로 괜찮은가?라고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보여주지 못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으며 25분안에 보여주기에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1963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을 시작한 해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청춘의비'「ノンフィクション劇場 青春の碑」(日本テレビ、1964年、40分)

スタッフ:(制)牛山純一 (脚)大島渚 (撮)小室好一 (編)宮本祐輔 ()芥川比呂志 奈良岡朋子

                   

                                  『윤락의 응달』벗어나 일어선 4.19義擧(의거) 少女(소녀) 

                                                      1968.03.25  동아일보  3면  사회  기사(뉴스)
"윤락의 응달"벗어나 일어선 4.19義擧(의거) 少女(소녀) 한팔잃고 사창街(가)서六年(육년) "自活(자활)할때... 에「민주주의」를 외치다 오른팔을잃은朴玉姬(박옥희)(二四(이사))양이 사창가에 몸을던져 슬픔으로...


위에 링크에 등장하는 4.19혁명때 한 팔을 잃은 박옥희씨가 종로3가 사창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전쟁에 홀로된 사람들과 고아들이 평택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분이 옥희양을 이 곳으로 데리고 와 땀흘려 버는 재미를 알려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박옥희씨를 중심으로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한국 로케.


1960年に李承晩独裁政権を倒した学生たちのなかにあり、国家の功労者として金メダルまで授与された朴玉姫は、生活の困窮から売春婦となる。彼女は警官隊に機関銃で撃たれ、ひどいケロイドが残ったばかりか、右手を失ってしまっている。こうした朴の惨状を見かねて、黄チンホが援助の手を差し伸べようとする。黄は朝鮮戦争によって生じた孤児たちを報酬なしに引きとり、廃品回収と靴磨きを通じて彼らを自立させる運動を続けてきたのだ。だが玉姫は黄の中出を断り、左手で器用に口紅を塗っては夜の労働に備える。彼女の物語がラジオで放送されたため、人々が同情し、その金で借金を払うことが出来た。だが川べりのバラックの我が家には、もう二度と足を向けることはできない。どこまでも善意な黄に対し玉姫は、「この手で他に何をすればいいのよ」と激昂して語る。彼女は自分の傷をじっと見つめ、ふたたび一人で強く生きていこうと決意する。


다큐멘터리에 사용된 6.25전쟁 영상과 4.19 혁명의 영상은 수입된 필름을 썼을꺼라고 예상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기사와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감독은 박옥희씨의 삶에 대하여만 조명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희망으로 평택에 사는 사람들도 함께 조명했다고 한다. 그당시 일본인이 들어오기 위해선 많은 걸림돌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나 특별 취재 형식으로 들어가서 촬영한듯 하다. 

오오시마 감독이 해외에 나간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한다. 한국에 대해서 인지하고 갔는지, 정확히 알수 없으나, 감독은 촬영하고 돌아온 후, 큰 충격을 받았고,그곳에 살아남아 살고 있는 사람이 존경스럽다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두 편 모두 본 내 나이대의 한국인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가능하다면 다른 이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다.

 일반 극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이정도 다큐멘터리도 가능하다니 너무 놀랍다.  그리고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오오시마 감독에 만든 한국 또는 조선에 관한 네편의 영화도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다!!